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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6년2월12일(금) 재의 예식 다음금요일
  작성자 : 홍보분과 작성일 : 2016-02-12 조회수 : 1356 회

[ 다해 ] 2016년 2월 12일(금)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제1독서; 이사 58,1-9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열심히 단식하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웃에게 불의를 행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복음; 마태 9,14-15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묵상 ] 나와 같지 않으면 잘못인가

요한의 제자들이라면 그래도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 다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따진다. 일찍이 요한은 예수님을 크게 찬양하고 그분은 내가 신발 끈을 매어드리기도 온당치 않다고 했는데 그의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함은 안타깝다.


이렇듯 우리도 많은 부분에서 나와 같지 않은 이들을 비판한 적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을 수도 있을 것이며 복음의 가르침에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을 평가한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이 단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요한의 제자들은 미쳐 생각을 못 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단식하게 될 것을 일러 주신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 승천하시고 나면 당연히 주님을 묵상하며 단식을 통하여 주님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단식으로 생긴 마음이나 정성을 고통받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행하게 될 것이다. 단식을 통하여 말씀에 따라 살 것을 굳건히 하고 이웃과 나눔을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식을 마스코트를 지니듯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며 음식을 거르는 것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단식을 통해 마음도 새로워지고 복음적인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왜 단식을 할 것인지.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단식을 해야 한다. 나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마 다른 사람에 무언가 사랑으로 베풀어 줄 수 있는 나눔의 단식이 되어야 한다.


주님, 찬미 드립니다! 아멘.


진정한 단식 / 때가 되면 단식 - 150220

진정 단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율법에 정해져 있어서? 하느님의 공정을 따르기 위해서? 그냥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함께 고통을 참아 낸다는 명분?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과 가까이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단식하면서도 제일만 찾고 다투고 싸우며 못된 짓을 한다고 지적한다. 곱씹어 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냐?” (이사 56,6-7)


이렇듯 단식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내적으로 쇄신하여 마음의 변화를 하는 것이다. 희생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마음, 궁극적으로 복음에 따라 살려는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함이다. 단식은 결코 보이기 위한 수단이나 잠시 배고픔을 참아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신앙인들의 표양인 양 내어놓고 할 일도 아니다. 단식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새기며 조용히 평화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실제 삶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단식은 신자의 신앙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깨우침과 신앙심이 돈독해질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 찬미 드립니다! 아멘.


단식의 진정성 - 140307

오늘 복음에서 특별한 것은 보통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데, 요한의 제자들과 스승님의 제자라는 표현이 의문스럽다.


스승님의 제자란 예수님께서 직접 뽑은 사도들을 말하는 것일 텐데 요한의 제자들은 이들과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스승으로 호칭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신랑임을 나타내신다. 즉,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이 단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쁨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데 모두가 신랑을 맞이하고 신랑과 같이 먹고 있는데 단식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오게 되면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사랑이 없는 잔치는 그 막을 내리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 신랑을 그리워하며 흩어진 이들이 서로 염려하고 돌보기 위하여 잔치를 재연하는 마음으로 단식하며 서로 위해 봉사하고 가진 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잔치에 함께했던 그 모습대로 공동체가 되어 교회를 일으키게 될 것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구약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단식의 의무를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냐?” (이사 58,6-7)


이 말씀에 우리는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날, 잔치의 날 마음을 되새기며 공동체와 함께하나 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님, 찬미 드립니다! 아멘.


[ 관련 자료 ]


1. 매일미사 묵상 글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를 시작할 때 좋은 결심들을 하곤 하지요. 신학교나 수도회를 비롯하여 공동체 안에서도 몇 가지를 약속하고 함께 지키도록 다른 때보다 노력을 합니다. 어느 해 사순 시기에, 기도 시간에 늦지 않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연하게 한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래서 속으로 화가 났습니다. 무엇하려고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해마다 모여서 같이 하는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미사의 이사야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기도 시간에 늦지 않는 것 말고도 다른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같이 일할 때에 짜증 내지 않고 서로에게 힘을 주며 격려하면서 기쁘게 하자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약속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기도 시간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이 지탄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정해진 대로 혼자서 기도하고 단식하는 것은 어쩌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억압받는 이들을 풀어 주고 굶주린 이에게 ‘내’ 양식을 나누어 주며 집 없는 이를 ‘내’ 집에 맞아들이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어제 복음에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열심히 기도하고 단식한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위로하면서 양심의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느님께서 숨어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선행을 할 때 그렇게 생각합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베푼 다음, 하느님께 기도하면, 그때에 하느님께서 친히 보살펴 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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