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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작성자 : 홍보분과 작성일 : 2017-10-20 조회수 : 414 회

 

2017년 10월 20일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제1독서 로마 4,1-8

형제 여러분,

1 혈육으로 우리 선조인

 아브라함이 찾아

얻은 것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복음 루카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과학에서 사랑의 감정은

 2~3년 밖에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사람에 대한 호감을 갖고

또 매력을 느끼게 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은 생성된 지 2~3년이

지나면 소멸되기 때문이랍니다.

따라서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변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만약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현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삶 안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가는 말입니까?

하긴 결혼 전의 뜨거웠던 사랑이

 2~3년 지나면 언제 뜨거웠냐는

 듯이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종 있지요. 호르몬 때문이라는

과학의 말을 무조건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랑이 변한다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변하지가 않습니다.

바로 주님으로부터 우리는

진짜 사랑을 목격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진짜 사랑에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첨가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질적인 욕심과 이기심,

여기에 겸손하지 못한 교만

등이 들어가면서 처음 가졌던

 사랑이 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가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을 하겠습니다.

잠깐 불타오르고 사그라지는

사랑이 아닌, 변하지 않는

참 사랑을 말이지요.”
주님과의 진짜 사랑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세상의

것들에 흔들리고

또한 세상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고

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진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과 언제나 함께 하며,

삶도 죽음도 겁내지 않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것들에 많은

관심과 욕심으로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우리입니다.
내일이 시험인데 전혀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굳게 믿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당신께서는

분명히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주님을 사랑해서

바치는 것도 또 믿어서 바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저 주님을 감히

시험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책임감과 땀을 흘리는

노력을 보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향해서

내 자신은 어떤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고 있으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래야 진짜 사랑, 진짜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에머슨)

주님께서 진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실패를 기뻐하라."

미국의 정신분석가

 ‘디오도어 루빈’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첫걸음이다.

실패한 것을 기뻐하라.”
하지만 실패한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뻐하기보다는 실망하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절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에게 화를

 내다가 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주님께 대한 심한 원망까지

나아가게 되지요.
사실 그렇게 불평불만을

간직하고 원망을 한다 해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만

더 힘들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실패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실패라는 것을 배웠기에

이제는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패 자체에 머물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노력 안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로 인해서 잃은 것도

많겠지만, 분명히 새롭게

얻은 것도 많다는 것을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모두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멋졌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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